25주년 기념동영상
교회역사
- 초창기
초창기 : 1993년 ~ 1994년
1993년 10월 록곡 304호(당시 김대형/이성실 집사 가정)에서 세 가정이 모여서 예배를 드림으로 상하이한인연합교회는 상하이 한인 사회 복음화라는 큰 사명을 가지고 그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한중 수교 후 중국을 선호하는 한인들의 행렬이 줄을 잇다시피 했었다. 중국의 광활한 시장과 풍부한 자원, 게다가 값싼 노동력은 한국을 위시한 세계 각국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터에 한국인의 경우 이런 중국의 이점을 살려 경제적 이익을 성취하려고 했다. 그런 중에 중국 문화와 관심이 증폭되면서 이를 배우려는 유학생들이 늘어났다. 다양한 목적으로 중국에 진출한 한국인들은 중국의 수도인 북경과 지리적으로 한국과 근접해 있는 산동지역과 연안의 경제특구를 활동의 거점으로 삼았으나 그 중 상하이는 중국의 경제, 금융의 최대 도시로서 관심이 컸던 것이다.
그러나 한중 수교 초기에 상하이의 한국인은 적은 수에 불과했고 기업 주재원을 위주로 하여 한인사회가 구성되었다. 한중수교 후라고 하지만 상하이 정부의 외국인 거주지역 제한정책의 실시로 비교적 넓은 지역에 분산되어 거주하다 보니 교민사회의 형성이 많이 늦어졌다.
그렇듯이 한인교회의 경우도 역시 그러했다고 할 것이다. 상하이한인연합교회의 창립이 다른 지역에 비해 다소 늦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한중 수교 후 1년 지나도 상하이 한인 기독교인들은 교회를 세우지 못한 실정이었다. 그 지경에 한국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분들이 각자의 거처에서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갈급한 심정으로 사모했다. 그러던 중에 신앙생활에 뜻이 있는 분들이 서로 만나서 이야기를 하며 교제를 한 것이 한 가정을 선정하여 가정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그 때 가정예배를 드리기로 뜻을 모은 가정이 여섯 가정이었다.
이렇게 하여 첫 예배를 드릴 장소를 정한 것이 록곡빌라 304호이다. 어쩌면 그때의 가정예배가 사도 바울 당시의 가정예배와 같았다고 할 것이다. 상하이한인연합교회의 첫 주일예배가 시작된 것이다. 그 시기가 1993년 10월 첫 주일이었다. 작은 신앙 공동체가 뭉쳐 이역 땅 상하이에서 우리말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왠지 눈시울이 뜨겁고 감사와 감동으로 범벅되었던 것이다. 그날 첫 예배에 참석한 교인은 여섯 가정이었다.
이렇게 하여 그후 주일이면 록곡빌라 304호에 모여서 오붓하게 예배를 드렸으나 예배를 인도하는 설교자가 없었다. 목회자가 없는 아쉬운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들은 믿음의 열정이 있었다. 예배당 건물과 목회자가 없지만 정식 교회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힘써던 것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예배 시간은 주일예배 시간으로 정하고 매주 교회주보를 만들어 예배순서와 교회소식을 실었다.
예배는 20명 미만의 교인이 참석한 가운데 설교는 녹음테이프로 대신했다. 아직 목회자를 모시지 못한 실정에서 설교 테이프를 이용하여 말씀을 들었다. 첫 예배를 드린 지 두 달을 넘긴 그 해 12월 5일부터 주일학교를 시작했다. 주일학교 학생이라야 겨우 7,8명에 불과했고 록곡빌라 304호의 한켠에서 예배를 드려야 했다. 그런 중에 교회는 차츰 개척교회로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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